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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성경공부

이스라엘 왕국을 통해서 나타난 천국운동(삿-말) / 바벨론에서 칠십년 만에 돌아오는 유다인들(2)(느헤미야)

by 처음사랑 2011. 12. 4.

느헤미야서의 배경과 내용

  1. 느헤미야서의 배경
느헤미야에 의해 인도되는 제 3차 포로귀환(BC 444년)으로 시작되는 본서는 느헤미야의 2차 귀국(BC 432) 후의 활동을 잠깐 소개하는 내용으로 끝난다.

이처럼 불과 10여년의 짧은 기간을 배경으로 하지만 본서는 성벽재건(1:1-7:23)과 영적 부흥운동(8:1-13:31)이라는 두 개의 큼직한 주제를 심도 있게 전개시키고 있다.

당시에 느헤미야가 귀국할 때의 상황은 돌아온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는 많은 위기의 요소들이 나타나고 있다.

제 2의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되고 나서 성전을 건축한 당사자들이나 혹은 주변에서 모여든 자들 모두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메시야의 강림과 메시야 왕국에 대한 기대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기대대로 메시야의 강림도, 왕국의 재건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자 그들에게는 현실적인 여러 가지의 문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따라서 사람들은 현실의 이익을 쫓아서 예루살렘 위치해야 할 사람들이 주변 지역으로 흩어지게 되었고 따라서 예루살렘은 점차 사람들의 이탈과 주변 족속들의 침공으로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고 성벽은 함몰되어 가고 있었다.

이에 따라 여러 가지 문제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자신들의 삶의 위치와 사명의 자세이탈

- 율법을 지키는 일에 대한 소홀히 함.

- 이방인드로가의 잡혼 문제 등

이런 상황 속에서 올바른 지도자가 없이 방황하고 있는 예루살렘에 느헤미야는 사명감을 가지고 귀환하게 된 것이다.

  1. 느헤미야의 제목
본서의 중심인물이며 저자인 느헤미야의 이름을 따랐다.
  1. 저자와 기록연대
(1) 저자

어떤 학자들은 본서와 에스라서 및 역대기를 동일한 저자에 의해서 기록되었다고 주장하며 그 저자는 에스라 혹은 익명의 편집자일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본문에서 증거 되는 여러가지 정황을 미루어 볼 때 일반적으로 본서의 저자는 느헤미야로 본다. 본서는 느헤미야가 공직에서 은퇴한 후에 지난날의 행적을 회고하며 쓴 글인듯하다.

(2) 기록연대

느헤미야가 총독 생활에서 은퇴한 후인 BC 432-400년의 어느 시점에서 과거를 회상하며 기록한 것으로 짐작된다.

  1. 기록목적 및 특징
1) 기록목적

유다 땅으로의 3차 귀환, 성벽재건과 백성의 신앙 부흥 등을 통해서 나타난 선민을 향한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서 본서가 기록되었다.

2) 내용전개

약속된 메시야가 탄생하기 전 약 400년 전에 기록된 본서는 에스라서에 이어 구약 역사의 마지막 부분을 소개하고 있다. 이 시대는 바사 왕국의 전성기요 그리스와 로마도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초점을 맞춘 본서는 당시 귀환민들의 상황만 기록하고 있으며 이방 민족의 역사는 단지 이스라엘과 연관된 부분만 언급할 뿐이다. 본서 역시 성벽재건 과정을 기록한 전반부와 영적 부흥운동에 관한 기록인 후반부로 대별된다.

ㄱ. 성벽재건(1-7장)

바사 왕실의 술 맡은 관원으로 일하던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훼파의 소식을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현실적 안락함과 부귀보다는 언약공동체의 안전과 번영을 더 소중하게 여겼던 믿음의 인물인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의 허락을 받고서 BC 444년 경에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였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지 사흘 후에 그는 성벽을 두루 탐사하였으며 백성들의 거주지를 고려하여 재건 사역을 적절히 할당하였다.

성벽재건 과정에서 조롱(4:1-5), 협박(4:8-8), 모함(6:5-9)등 대적들로부터 갖가지 방해를 받았지만 느헤미야의 탁월한 수완과 결단, 그 무엇보다 여호와께 모든 것을 의뢰하는 확고한 신앙에 힘입어 이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불과 52일 만에 성벽이 완공되었다. 이는 실로 하나님의 도우심의 결과였다.

ㄴ. 영적 부흥운동(8-13)

예루살렘 성벽이 완공됨으로써 대적들로부터의 외침에 대한 방비벽은 구축되었지만 더 위험한 것을 내부의 적, 곧 백성들의 영적 태만이었다.

본서 후반부에는 성벽 봉헌식 이전에 행해진 에스라에 의한 율법 낭독과 초막절 준수(8장), 범 민족적인 회개운동과 언약갱신(9장)과 같은 이스라엘의 영적 부흥운동이 수록되었으며 백성들의 예루살렘 재정착과(11장) 단호한개혁 조치(13장) 등이 기록되어 있다.

느헤미야서의 내용정리

느헤미야서는 앞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1:1-7:23)
유다로부터 내려온 자의 슬픈 보고와 느헤미야의 눈물의 기도(1장)

- 유다로부터 내려온 자가 예루살렘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고 보고함(1-3)

- 느헤미야가 슬퍼하며 기도함(4-11)

왕의 허락과 느헤미야의 예루살렘 도착(2:1-10)

성벽 재건을 위한 준비작업(2:11-20)

- 성벽을 탐사함(2:11-16)

- 유다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 성벽 재건을 호소함으로 저희가 뜻을 모아 일어남(2:17-18)

- 이에 대적들이 일어나 훼방하려함으로 느헤미야가 단호하게 건축을 선언함(19-20)

성벽의 재건 공사가 진행됨(3:1-6:14)

- 재건 사역의 착수(3:1-32) 유다의 각 지도자별로 지역을 맡아 성벽을 건축하기 시작함

- 재건 방해 공장과 느헤미야의 대책(4:1-23)

        훼방자들의 조소(4:1-6)

        대적자들의 위협(4:7-8)

        느헤미야의 방비와 백성들의 사기 저하(9-12)

        느헤미야가 백성들을 두려워 말도록 권면하고 모든 일꾼들로 하여금 무장하게 함(13-23 / 한 손으로는 일을 하고 한 손에는 병기를 잡게 함 4:17)

- 내부 문제와 그 수습(5:1-13) 당시 백성의 지도자들이 백성을 착취함으로 백성들이 항의를 함으로서 느헤미야는 그 지도자들을 책망하고 그들이 저당 잡은 것들을 모두 돌려주게 함

- 그는 이어서 자신이 총독으로 있었지만 그 기간동안(12년) 선정을 베풀었으며, 총독으로서의 녹을 먹지 아니했다고 고백하고 있다(5:!4-19). 신약의 사도 바울 역시 그의 전하는 복음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자기의 권한을 다 쓰지 않고 희생했었음을 볼 수 있다(고전 9:12-19).

- 느헤미야를 암살하기 위한 적의 음모(6:1-14)

        암살에 대한 모략(1-4)

        느헤미야가 반역했다고 중상 모략함(5-9)

        대적들이 선지자를 뇌물로 매수하여 느헤미야에게 거짓 예언을 하게 해서 두렵게 하려고 계략을 꾸밈(10-14)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침내 성벽공사가 오십이일 만에 완공됨(6:!5-19) 이 일로 인하여 대적들이 낙심하게 됨

예루살렘성에 대한 경비(7:1-4) 예루살렘 성내는 넓은 반면에 사는 자들은 적음

귀환자의 명단을 중심으로 한 인구조사(7:5-73) 당시 성벽건축을 완공한 느헤미야에게는 낙성식을 할 겨를도 없이 새로운 문제가 부딪히게 되는데 그것은 예루살렘의 공동과 현상이었다.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과 함께 예루살렘을 방비하려고 조직을 편성하였으나, 주민의 수효가 극히 적음으로써 불가능하였다(4). 그 원인을 살펴보면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왔을 때 처음에는 자신들의 조상들에게 원래부터 할당된 예루살렘에 정착하여 살았으나 차츰 신변의 위협을 느끼면서 예루살렘을 떠났던 것이다. 그에 따라 예루살렘의 인구는 현저히 줄어들어 훌륭한 성벽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읍 자체의 방어가 곤란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성벽 재건을 마친 느헤미야는 낙성식을 가질 겨를도 없이 서둘러서 이에 대한 방책을 세우게 된다. 우선 그는 예루살렘 성 안의 감소된 인구를 늘리기 위해서 1차 귀환 때의 명단을 통해서 백성들 자신들의 조상이 할당받아 점유해 살았던 곳을 상기시켜 예루살렘으로 이주한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으기 위해서 제 1차로 바벨론에서 귀환할 때의 명단을 확보해서 조사하게 된다. 그리고 이 같은 인구 재배치 사업은 백성들의 영적 각성운동이 마쳐진 후에(8-10) 완성되게 된다. 그리고나서 비로소 12:27에 와서 예루살렘 성곽에 대한 낙성식을 갖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1. 영적 각성 운동(8-13)
백성들의 영적 각성 운동에는 제사장이요, 율법 학사인 에스라가 다시 등장하게 된다. 에스라는 에스라 10장의 사건 이후에 모습을 감춘 후 무려 14년이 지난 후에 다시 나타나게 된다. 이처럼 에스라가 예루살렘 성벽재건의 문제로 온 나라가 법석이었으며 또한 고리대금으로 인한 경제적 문제로 나라가 떠들썩했는데도(느5장) 일절 나타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느헤미야가 BC 445년에 팔레스틴의 총독으로 부임한 후에 페르시아 왕실의 소환으로 거기에 약 1년간(BC 433) 다녀온 것처럼(13:6) 에스라도 에스라 10장 사건이 마무리 지어진 BC 458년 이후의 어느 시점에 바벨론으로 돌아갔다가 BC 444년 경에 다시 돌아왔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제 이스라엘의 영적 각성운동은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ㄱ. 언약의 갱신(8-10) 
율법서의 낭독과 해석. 이에 따른 백성들의 감격적인 반응.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백성들을 만류하여 그날은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고 함게 기뻐하고 먹을 것을 나누라 함(8:1-12) 
그 이튿날 백성들이 에스라에게 다시 모여서 율법책을 보게 되고 그 속에서 초막절의 말씀을 깨닫고 이어서 백성들이 초막절의 절기를 지키게 됨(8:13-18) 
이어서 진행되는 백성들의 대대적인 회개와 언약의 갱신(9:1-10:39)
백성들의 철저한 회개의 시작(9:1-5) 
아브라함의 소명부터 광야 40년의 회고(9:6-22) 
가나안 입성 후 계속되는 선조들의 반역의 회고(9:23-31) 
이스라엘의 범죄와 이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간구함(32-38) 

이제 성벽 재건 후부터 고조되어오던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 부흥운동은 백성들이 언약을 갱신하고 서약하는 내용을 기록한 10장에서 그 절정을 이루고 있다. 앞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통렬하게 회개하는 사실을 언급했던 저자는 본장에서 백성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견고히 세워(9:38) 새로운 삶을 살기로 굳게 다짐하는 사실을 기록함으로써 백성들이 영적으로 각성하고 그 분위기가 극에 달했음을 말하고 있다. 
- 백성들이 인을 침으로써 자신들의 다짐을 확증함(10:1-27) 
- 백성들이 경건하게 살고자 다짐함(28-31) 
-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관리하고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헌신하고 제사장들이 봉사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줄 것들을 율법대로 행하여야 할 것을 다짐함(32-39) 

ㄴ. 언약에 대한 순종(11-13) 
 이제 11장부터 13장까지는 이같은 영적 각성이 이루어진 후에 이제 그것들이 실제로 열매로 나타나는 모습들을 기록하고 있다. 진정한 회개와 영적 각성은 결국 아름다운 삶의 열매로 나타나야 할 것을 본 사건은 보여주고 있다. 그 중에서 첫 번째로 나타나는 것이 11장의 내용인데,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인구 재배치의 사업이 완성되는 장면이다. 사실 이것은 느 7장에서 시작된 사업의 완성이기도 하다. 당시에 성벽을 완성한 느헤미야는 낙성식을 행할 겨를도 없이 예루살렘에 거할 사람들에 대한 충원에 대해서 고민해야 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한편에서는 그 일에 필요한 기초작업과 함께 영적 각성운동을 전개한다. 사실 느헤미야에게는 그 일이 급했지만 서둘지 않고 오히려 영적 각성운동을 일으켜서 백성들이 억지로가 아닌 하나님의 성전을 향한, 그리고 예루살렘을 향한 간절한 열정들이 회복된 후에 이같은 인구 재배치 사업을 은혜 가운데 완성한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10장에서 본 것처럼 이제는 그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결코 버리지 아니하고 그곳에 필요한 모든 것을 헌신하여 성전을 유지하고 관리할 것을 다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상황에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인구 재배치 사업은 은혜롭게 진행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인구재배치 사업의 완성(11장) 
- 재배치에 대한 기준(1-2) 여기서 우리는 인구 재배치가 강제적인 방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은혜로운 선택에 의해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다.  
        백성의 두목은 의무적으로 예루살렘에 머물게 함(1)
         그 남은 백성은 제비를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와서 거하게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른 성읍에 거하게 함(1)
         예루살렘에 거하기를 자원하는 자들을 위해서 백성들이 복을 빔(2) 
- 예루살렘성 안에 정착한 자들의 명단(3-24)
         백성의 대표자들의 명단(3-9)
         제사장들의 명단(10-14)
         레위사람들과 성문지기의 명단(15-24) 
- 백성들이 거한 성을 중심으로 그 밖의 지역의 이름을 서술함(25-36) 

이제 어느 정도 영적운동을 통해서 안정된 가운데 인구 재배치의 사역을 완수한 느헤미야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성벽의 낙성식을 거행하게 되는데 이것을 다루고 있는 것이 12장이다. 
- 낙성식을 위한 종교적 준비(1-26) 본문은 예루살렘 성벽의 봉헌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과 느헤미야가 먼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주목하고 그들의 계보를 살펴서 기록한 부분이다. 이는 이제 인구 재배치에 이어 앞으로 이루어질 본격적인 개혁을 위한 전 단계의 과정임을 알 수 있다.
         스룹바벨과 예수아 때 함께 귀환한 제사장(1-7)과 레위 사람들의 명단(8-11)
         요아김 때에 제사장으로서 족장이 된 자의 명단(12-21)과 레위 사람으로서 족장이 된 자의 이름(22-26) -낙성식의 거행(27-43)
         성벽의 낙성식을 위해 소집된 레위인의 명단(27-29)
         그들이 낙성식을 위해서 몸을 정결케 함(30)
         감사 찬송하는 두 무리의 참여자들과 그들이 순회한 지형들(31-39)
         봉헌식 때에 드려진 제사와 찬송. 이에 따른 기쁨의 역사(40-43) 
- 레위 족속을 위한 십일조 제도의 정비(44-47) 여기서부터 13장은 눈 앞에 보이는 부분들의 개혁만이 아니라 실제적인 영적인 삶이 회복되어야 할 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중에 첫 번째 부분이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위한 백성들의 십일조의 삶이었다.
         십일조 제도를 확립하게 된 동기와 과정(44)
         레위인들의 사역의 중요성을 소개함으로서 십일조 제도의 확립의 필요성을 강조함(45-46)
         그들을 위한 십일조의 분배의 기준을 위한 예(47) 

13장은 십일조의 개혁에 이어서 생활 속에서의 개혁되어져야 할 실제적인 부분들을 개혁해가는 상황을 다루고 있다. 
- 이방인들과의 단절할 것을 엄히 명한 후에 도비야를 성전에서 추방시킴(1-9) 
- 이때 당시에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과의 혼합주의였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가져야할 예배나 거룩함 등이 사라지게 되었다. 따라서 느헤미야는 진정한 개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방인드로가의 단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에 대해서 단호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교도와의 교제를 단절할 것을 명함(1-3)
         암몬출신 도비야를 성전에서 쫓아내고 성전의 기물을 제자리에 놓음으로써 그곳을 정화함(4-9) 
- 십일조 징수의 강화(10-14)
         십일조를 해야 할 이유(10) 레위인들이 십일조를 받지 못함으로 생계유지에 어려움이 있음으로 사명지에서 도망하게 됨
         이에 대한 느헤미야의 책망과 레위인들을 다시 소집함(11)
         이에 온 이스라엘이 십일조를 드리게 되고 그것을 본배하게 됨(12-13)
         이 사건으로 인한 느헤미야의 기도(14) 
- 안식일 준수에 대한 강화(15-22)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안식일을 범하는 모습(15-16)
         안식일을 회복하게 위한 느헤미야의 꾸짖음(17-18)
         이 일을 위한 느헤미야의 조치와 기도(19-22)
 -이방인과의 통혼금지(23-31)
         통혼을 통해서 나타난 문제들(23-24) 우리는 이런 통혼에 대한 문제가 당시에 얼마나 심각했던 것인가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에스라의 개혁도 이것이 중심이 되고 있고(스 9-10장), 선지자 말라기도 이것을 지적하고 있다(말 2장).
         이에 대한 느헤미야의 조치(25-27) 옛적 솔로몬 왕이 이방 여인들 때문에 망하게 되었던 사실을 상기시킴
         제사장의 자손들가지도 통혼한 상황에서 느헤미야가 대처한 단호한 조치들(28-31) 우리는 이상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후의 이스라엘 민족과 그 왕국에 대한 역사를 살펴보았다. 이제 느헤미야 이후의 역사는 성경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일반역사를 통해서 살펴보게 된다. 

우리가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를 마치기 전에 기억해야 할 중요한 대목은 삼하 7장의 하나님이 다윗에게 하신 언약의 말씀이다.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 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삼하 7:12-16)’ 

이스라엘의 역사는 바로 이것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보여주게 된다. 앞에서도 살펴본 것처럼 이 예언이 이루어진 것은 눅 1:31-33이다.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에 천사는 바로 이 사건이 위의 말씀인 삼하 7:12-16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이ㅜ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 1:31-33)’
그러므로 우리는 삼하 7장의 말씀이 현실적으로는 이스라엘 왕국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메시야의 왕국 곧 주님이 이루실 천국이라고 하는 사실을 볼 수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같은 사실들이 선지자들을 통해서 더욱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 왕국이 분리되고 망하고 다시 회복되는 과정 속에 많은 선지자들이 등장하게 된다. 그중에는 글을 남긴 자들도 있고 당시에만 예언을 하고 글은 남겨두지 않은 선지자들도 있다. 그렇다면 이 선지자들은 무엇을 예언했을까? 알고 보면 삼하 7장의 하나님의 다윗에게 언약하신 내용들을 예언했음을 볼 수 있다. 
다윗의 후손, 그리고 그가 와서 이룰 다윗의 왕국건설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눅 1:31-33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삼하 7장을 이루신 다윗의 자손이었지만 그가 이 땅에 와서 이룬 것은 유다 왕국의 회복이 아니라 십자가에 죽으심이었다. 여기에 당시에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과 백성들, 그리고 예수님과의 오해가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주님은 유다왕국을 꿈꾸는 제자들과 백성들에게 자기의 나라는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고(요 18:33-37), 그를 유대인의 왕으로 추대하려고 할 때에 오히려 피해버리심으로서(요 6:15) 유다왕국의 도래를 기다리던 그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기도 했던 것이다(눅 24:19-21). 그러면 다음 주에 역사서의 마지막 책인 에스더서에 대한 부분을 살피고나서, 위에서 살펴본 왕국시대에 나타났던 많은 선지자들의 예언을 살펴보면서 이스라엘 왕국과 천국의 관계들을 살펴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