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 코드 : 비밀스런 감춰진 진실?
성경을 공격하고 있는 반기독교적 베스트 셀러
(The Da Vinci Code : Secret hidden truth?)
Alex Williams
악마(Devil)은 거짓말쟁이며 모든 거짓의 아비이다. 사람의 마음(heart of man)은 무엇보다 미혹되기 쉬우며 극도로 부패한다. 이 둘이 합치면 정말로 매우 해로운 독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적들이 성경(Bible)을 불신시키기 위해서 가능한 모든 전략들을 시도해 볼 것이라는 것을 예상해야만 한다. 이런 토대 속에 최신 베스트셀러 책(저자의 웹 사이트에서는 고금을 통해 가장 널리 읽히는 책 중의 하나라고 주장함)은 댄 브라운(Dan Brown)이 집필한 다빈치 코드(The Da Vinci Code)이다. 영화판권은 이미 소니 영화사에 팔렸고, 총감독은 2005년 영화상영을 목표로 제작에 몰두하고 있다(론 하워드 감독,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다빈치 코드'가 2006월 5월 19일 개봉 예정이었고 이미 개봉 되었다).
태평스런 독자들은 이 작품이 단지 카톨릭 교회의 오푸스 데이(Opus Dei)회에 반대하는 성배를 지키려고 하는 자들을 함정에 빠뜨리는 살인 미스테리를 다룬 흥미진진한 공상 소설에 지나지 않는데, 왜 항의를 하냐고 질문한다.
첫째 이유는 이 소설이 역사적이 사실(fact)에 의거한다는 대담한 진술 때문이다. 책의 첫 페이지에는 '이 소설에 기술되는 모든 예술품, 건축, 문서와 비밀의식들은 정확합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겨우 1명의 비평가가 동의하면서, '그의 연구에는 오류가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오류가 없는 연구?
그러나 분명 오류가 있다. 예를 들면, 다빈치 코드에 등장하는 영웅 주으이 한 명은 레이 티빙(Leigh Teabing)경이라는 저명한 역사가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성배를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첫번째로 성경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성경은 천국으로부터 팩스로 보내지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사람의 작품입니다.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리고 성경은 무수한 번역, 추가와 개정을 통하여 생성되었습니다. 역사는 결코 그 책의 최종적인 버전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방황하던 하나의 역사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수 천의 추종자들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80개 이상의 복음서들이 신약성경에 포함되는 것이 고려되었습니다. 어떤 복음서가 성경에 포함될지를 누가 결정했을까요?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성경은 이교도인 로마 황제 콘스탄틴(Constantine)에 의해 집대성되었습니다(다빈치 코드 p 231)"
굉장히 많은 역사적 오류들은 계속 나열하고 있지만, 이 한 페이지만 보더라도 그것을 설명하는 데에 충분하다.
모든 성경은 그 자체가 정말로 '하나님의 감동으로(God-breathed) 된 것'이라고 증언하고 있다(딤후 3:16).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며(벧후 1:21), 예수님은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마 24:35, 막 13:31, 눅 21:33). '무수한 번역본들'에 의해 그 의미가 소실되거나 와전되지 않았다. 최초의 언어는 히브리어(구약성경, 일부는 아람어)와 그리스어(신약성경)이었다. 예를 들면 성경의 현대 영어 번역본은 고대 그리스어와 옛 히브리어 필사본의 세밀하게 준비된 기록들(수 천의 필사본으로 퍼져나감)에 의거한다. 기원전 1세기에 쓰여진 사해 사본(Dead Sea Scrolls)은 구약성경 책의 필사본들이 1000년이 지나도 최초 히브리 성경과 거의 일치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필사중에 생겨난 약간의 오류들은 중요한 문제가 안되고 있다.
역사는 '성경의 최종 버전(Definitive Version)'을 확실히 가졌음을 증거하고 있다. 라틴 불가타 역본(Latin Vulgate, 4세기에 제롬이 라틴어로 번역한 성서)은 1000년 이상 최종적인 버전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후 개신교와 가톨릭교회 버전으로의 갈림은 주로 신학적 교리에 의해서였지, 필사본의 문제 때문이 아니었다. 현대 개신교와 가톨릭 성경의 내용은 구약성경에서 약간 다른 점을 제외하고는 모두 유사한 필사본에 근거하고 있다. 어떤 방법으로도 주요한 교리는 필사본의 차이로 인해 애매해지지 않았다. 정말로, 유사한 고대 필사본들이 많다는 사실은 최초의 원본들이 매우 정확했음을 가리키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그의 삶은 수천 명의 추종자에 의해 기록되었던, 불안한 영향을 끼치던 한 역사적인 인물이었으며, 그 당시 로마 제국의 변두리에서 자신의 출생지로부터 지척거리 내에서 살았고 죽었던 무명의 목수였다. 그의 '불안한 영향'은 몇 세기가 지난 후에도 나타나지 않았으며, 결국 잘못된 많은 복음들을 만들어 내었고, 아무도 그와 경쟁하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콘스탄틴 황제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을 선택하도록 했다는 생각은 웃기는 일이다.
신약성서 문서들에 대한 수집은 1세기 이내에 시작되었다. 바울은 누가복음을 '성경(Scripture graph)'로서 참조했다(딤전 5:18에는 신 25:4과 눅 10:7을 성경에 기록된 예로서 인용하고 있다). 베드로는 바울의 서신들이 '성경(Scripture)'이었고, 벧후 3:15-17에서 베드로는 바울의 서신들을 권위가 있는 것으로 인정했고, 수신자들에게 '다른 성경(the other scriptures)'과 같이 그 의미들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는 사람들을 경계하라고 경고하고 있다.
틀린 경전들로부터 진정한 경전들을 찾아내고 분리해내려는 작업은, 이단자였던 마르시온(Marcion)이 권위가 인정된 책들을 매우 축소시켜 자신의 목록을 만든 2세기에 동기를 부여받게 되었다. 모방은 항상 원본 이후에 출현하므로, 신약성경 수집의 주요 형태들은 그 당시 모습을 갖추고 있었음을 의미하고 있다. 서기 325년 니케아 공의회(Council of Nicaea, 콘스탄틴 황제가 소집했지만 결정을 내린 것은 318년의 주교 모임이었다)에서, 그 의제는 토의조차 되지 못했다. 공의회의 토의는 그리스도의 신성에 집중되었고, 그 주제에 대해서 말하고 있던 4복음서의 권위는 참석한 모든 주교들에게 당연시 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갖고 있는 신약성경 27권의 책(우리가 소위 정경(Canon)이라고 부르는)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최종적인 성명은 AD 393년과 397년에 아프리카 교회회의(African synods, 히포와 카르타고에서 개최)에서 선포되었다.
정경은 하나님에 의해서 결정되고, 단지 사람들에 의해 인정될 뿐임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명한 신약성경 학자인 브루스(F. F. Bruce)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잘 설명하고 있다.
"신약 성경의 책들은 정경 목록에 형식적으로 포함되어진 것이기 때문에, 교회를 위해서 권위를 갖게된 것이 아니었다. 이와는 반대로, 신에 의하여 영감을 받은 것을 교회가 인정했기 때문에 교회의 정경에 포함되었던 것이다. 교회 공의회들은 기독교계 내에 어떤 새로운 것을 강요했던 것이 아니라, 이미 기독교 사회 내에서 이미 일반적으로 실행되고 있던 것들을 집대성했던 것일 뿐이다."
그리스 신약성경(Greek New Testament)의 세계적인 권위자 중 하나인, 브루스 메트져(Bruce Metzger)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여러분은 정경이 교회 정치가 관여한 일련의 싸움의 결과가 아니었다라는 점을 이해해야만 한다... 정경은 책들의 권위있는 목록이기 보다는 권위있는 책들의 목록이다. 이 책들의 권위는 선택되었기 때문에 부여된 것이 아니었다. 각 책들은 누군가가 그것들을 함께 모으기 전에 이미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실수들, 그것은 늘 있던 것이 아닌가?
그러나 다른 소설 책들도 동일한 품위없는 역사적인 실수들을 분명히 자행해 왔다. 그러므로 왜 이 다빈치 코드 소설에 대해서만 걱정하고 있는가? 왜냐하면 이 소설은 매우 저명한 일부 실제 인물과 조직인(그리고 거의 믿을만한) 레오나르도 다빈치, 오푸스 데이, 진짜보다 가짜 복음서를 더 선호하는 '역사학자들'을 이 음모이론과 함께 등장시켜서 교묘하게 사실인 것처럼 위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이 소설에서 신성한 성배(Holy Grail)는 술잔이 아니고, 사람이라는 것이다. 신성한 성배는 예수님과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은 한 여성 막달라 마리아(Mary Magdalene)라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유명한 작품인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 그림 속에(예수님의 오른편, 명예스러운 자리에) 바로 이 여인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댄 브라운은 소설적 기법을 활용하여 예수님의 인간성에 대한 유혹적인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결혼을 포함시켜야 했다(그래서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도록 주장한다).
댄 브라운이 '막달라 마리아의 복음서(Gospel of Mary Magdalene)'는 '변경될 수 없는(unaltered)' 사실이고(p 248), 따라서 이러한 사건들 이야기가 진실이라고(그러나 그가 인용한 말들은 이 소설이 사기임을 무심코 드러낸다) 주장할 때, 총명한 독자들은 이 소설이 실패작임을 알게 된다. 이 영지주의 복음서(Gnostic gospel)는 세 개의 단편적 필사본으로 알려져 있었고, 그 출현은 2세기 중반으로까지 그 시기가 거슬러 올라간다. 이와 같은 또는 다른 영지주의 복음서가 기술되기 이전에, 이미 교회는 4개의 정경이라고 인정 받은 복음서들의 권위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혜롭지 못했던 사람들은 쉽게 이러한 이단 사설에 속았을 수도 있다.
한편, 강한 영향력이 있는 카톨릭 집단인 오푸스 데이회는 그들의 '비밀'이 노출되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 조사를 무위로 끝내기로 작정하고 살인을 자행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그들이 말하는 원래의 '진정한' 기독교 신앙은 여신 숭배 의식이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기독교 역사를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부장적 여성혐오(Misogynist patriarchal)' 버전으로 대체하여 재구성해 놓고 있는 것이다.
역사의 가치
여기에서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들이 있다. 우리의 믿음은 어디에 근거하는가? 밝혀진 진실에 근거하는가, 아니면 비밀스런 감춰진 진실에 근거하는가? 나의 신앙은 모세로(정말로 아담으로까지, 창 5:1) 거슬러 올라가는 문서화된 밝혀진 진실에 근거한다. 모세는 죽기 바로 전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신 29:29)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이 아니요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신 30:11-14)
말씀이 그들에게 가깝게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그 말씀이 쓰여지도록 보증하셨기 때문이다(출 31:18, 신 31:9-13,24-29)
기독교 신앙에는 어떤 숨겨진 원리가 자리잡을 곳이 없다. 숨겨진 심오한 것들이 확실히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문서로 우리에게 원리를 확실히 보여주셔서, 우리가 그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을 때 우리가 변명하지 못하도록 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판단의 기준은 우리에게 전하셨던 말씀이다(요 12:48). 따라서 논리적으로 보면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그 말씀을 신뢰할 수 있도록 하는 기록들을 이미 제공하셨다는 것이고, 진정한 역사가 그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훼손하고, 부정할 의도로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사용하고 있는 소설가들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http://www.creation.or.kr/library/itemview.asp?no=3206&category=B02&orderby_1=editdate%20desc&page=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