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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예배강의

예배와 성경(2)

by 처음사랑 2014. 12. 24.




족보

‘족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창세기에 책을 섹션으로 나누는 표제로 11차례 사용된다(2:4; 5:1; 6:9; 10:1; 11:10,27; 25:12,19; 36:1,9; 37:2). 이 족보들은 때로는 앞서 기록된 내용과 연관되어 있고(5:1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때로는 그 섹션의 중심인물과 연관되어 있고(6: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때로는 뒤따르는 텍스트의 주제, 중심인물의 아버지와 연관되어 있는 등(11:27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가끔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곳에서도 사용되어 오히려 글의 흐름을 끊어 놓는다는 느낌을 주는 곳도 있다(36:1 '에서 곧 에돔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36:9 '세일 산에 있는 에돔 족속의 조상 에서의 족보는 이러하고'). 서로 다른 장르와 내용의 텍스트를 하나로 묶는 역할도 하는 듯하다. 예를 들면 6:9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셋 자손들의 계보(5:1-32)와 하나님의 인류 심판 결정(6:1-8)을 함께 묶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학자들은 창세기의 구조를 논할 때 이 단어의 사용을 기준으로 섹션을 구분한다. 여러 의견이 분분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단어가 사용될 때마다 새로운 섹션이 시작되거나 이 때까지 전개된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있음을 알린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왜 창세기는 ‘족보’에 깊은 관심을 쏟는 것일까? 무엇보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시작되기 전에 세상의 역사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가를 보여 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의 존재성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사람의 가치와 자존감을 논할 때 가장 중요한 이슈는 ‘우리는 누구에게서, 어디에서 왔는가’이다. 창세기는 이 문제에 대해 ‘인간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


셈, 함, 야벳의 족보가 기록된 10장을 살펴보면 셈과 야벳의 족보는 여러 아들 중 한 아들(장자로 추정되는)의 계보만 기록된다. 하지만 함의 아들의 계보는 구스(장자로 추정됨)와 가나안의 계보가 기록되어 있다. 그러면 모세는 왜 ‘가나안의 계보’도 기록을 해 놓았을까? 모세오경을 기록한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이 땅에 있었다. 즉 창세기를 비롯한 모세오경을 최초로 읽는 원독자는 광야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인 것이다. 430년간 노예로 살다가 모세를 따라서 애굽땅을 나온 사람들이면서 광야의 척박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장차 자신들은 한번도 보지 못한 미지의 땅인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한다. 모세는 노아의 아들 함의 계보 안에 언급하지 않아도 될 가나안의 계보를 언급하면서 현재 광야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장차 들어갈 땅에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노아가 예언했던 가나안을 향한 말들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창 9:25). 현재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강대해 보이는 가나안의 일곱 족속들은 하나님께서 이미 이스라엘에게 굴복하도록 예언하신 족속이라는 것을 계보를 통해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창세기를 읽는 원독자, 즉 창세기가 처음 기록될 때 창세기의 기록자가 읽게 하려던 대상인 광야 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의 유래가 어디로부터인지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족보, 계보였다. 430년의 노예 생활 후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자존감이라는 것이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홍해를 건너면서 노예에서 확실하게 벗어났지만 아직도 그들은 자신들의 땅도, 집도 없는 신세였다. 거기에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을 불신함으로 인해 40년의 광야생활을 지내야 했다. 아직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도 못했고 그 땅의 사람들에게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자신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알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배자로 부르셨다.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사람들로 부르셨다. 이스라엘을 택해서 '제사장 나라'를 삼으셨던 하나님은 이제 우리를 택해 온 민족과 열방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는 예배자들로 삼으신 것이다. 창세기에서 족보를 대하면서 예배자인 나 자신이 어디에서부터 오게 되었는지를 알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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