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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예배강의

예배와 성경(43) - 역대기

by 처음사랑 2015. 10. 15.



이번 내용은 좀 길고 딱딱합니다. 여태 대부분 짧고 딱딱했지만..;;



역대기

역대기의 기록시기와 내용

역대기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지 100여 년이 지난 후의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미 나라가 망하고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는 것이었다. 열왕기서에서 이미 왕들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 했음에도 불구하고 역대기를 다시 기록하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미 기록되고 알았던 역사서에서의 이야기 이면에 하나님께서 현재의 망한 백성들에게 하시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는 것이 은혜이고 희망이다


역대기는 열왕기와 달리 남유다의 왕들에 대한 이야기만 기록하고 있다. 또한 최초의 사람인 아담으로부터 시작해서 당시 역사의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고레스의 칙령으로 끝이 나고 있다. 즉, 역대기는 당시 사람들이 알고 있는 모든 역사를 기록한 책이었다. 역대기에 바로 붙어서 이어지는 내용을 가진 책이 에스라와 느헤미야이다. 


학개서 2:6-9에 나타났던 예언에 따라 기대했던 것들은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다. 다윗 가문은 시들어졌고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도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아하수에로 왕때 하만으로 인해 유다 공동체는 큰 위기를 당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유다 공동체는 성전을 완공한 후에도 오히려 더 냉소적이 되어 갔고 삶은 엉망이 되어 갔다.


말 1:6-14과 2:1-9을 통해 보면 제사장들이 흠있고 병있는 짐승을 바치면서도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율법 집행을 편파적으로 해서 성직 품위를 훼손 시키고 있었다. 일반 백성들은 안식일을 무시하고 장사하고 있었고(느 13:15-22) 십일조를 내지 않아 레위인이 생계를 위해 직무를 버리는 일이 있었으며(느 13:10 이하) 신앙에 충실해도 득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살았다(말 2:17,3:13-15). 이혼이 성행 했으며(말 2:13-16) 임금을 착취하고 약한 자를 이용하며(말 3:5) 가난한 자들이 땅을 뺏기고 자녀와 함께 노예로 전락하게 만들었으며(느 5:1-5) 이방인들과 통혼을 했다(느 13:23-27).


이런 상황에서 역대기는 현재 존재하는, 다시 재건한 예루살렘 성전이 유다 공동체와 하나님을 연결시켜주는 끈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여호와의 성전이 다윗 왕조를 통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역대기 기자는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기사를 서술할 때 주로 성전 건축 준비와 성전 건축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역대기의 저자 에스라

역대기의 저자는 많은 학자들이 에스라라고 생각하고 있다. 에스라가 BC 458년에 바벨론에서 돌아온 것을 생각한다면 에스라는 BC 586년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난 이후, 거기에 BC 539년 고레스의 페르시아가 바벨론을 정복하고 난 이후에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에스라는 페르시아의 바벨론에서 태어난 사람이었는데 ‘율법에 능한 학사’로 불리었으며 또 ‘제사장’이라고 했다.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으면서도 모세오경에 대해 능통했고 이방인들의 나라 안에서도 제사장 역할을 하며 살았다. 그는 그렇게 살지 못할 환경에서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당시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율법을 가르칠 수 있었다.


이세벨과 아달랴, 요아스

아합왕이 아내 이세벨의 딸 아달랴를 유다의 여호사밧(4대)의 아들 여호람(5대)에게 시집보내면서 남북이 평화시대를 누린다. 하지만 아달랴와 여호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하시야(6대)가 북이스라엘 예후의 부하들에게 잡혀서 살해되자 이후 아달랴(7대)가 스스로 여왕이 되면서 다윗의 혈통을 끊어버리려고 요아스(8대)를 제외한 왕족을 몰살시킨다.


아합은 아내 이세벨을 통해 북이스라엘에 바알을 들여오는 장본인이 되어 이스라엘을 우상숭배에 빠지게 하는 주범이 되었으며, 자기 딸을 남유다로 시집보내면서 바알도 함께 보내 남유다마저도 바알숭배에 물들게 했다. 이로 인해 남유다는 다윗의 혈통마저 끊어질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 위기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요아스가 바알종교 세력을 척결하는 종교개혁을 일으킨다.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9대), 웃시야(10대), 요담(11대)까지 이어지는 왕들은 선한 왕으로 불려지고 힜다. 폭풍을 지나고 나서 오히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세력이 형성된 것이다.


앗수르에게 시달리던 시기

요담의 아들 아하스(12대, 히스기야의 아버지)때로부터 히스기야(13대), 므낫세(14대), 아몬(15대)까지 앗수르에게 시달리는 시기였다. 북이스라엘을 정복한 앗수르가 남유다까지 괴롭히는 시기였다. 이 당시에 활동한 선지자들이 이사야, 미가였다. 앗수르는 바벨론에게 망하고 말았다.


바벨론에게 망하는 시기

요시야(16대), 여호아하스(17대), 여호야김(18대), 여호야긴(19대), 시드기야(20대)는 바벨론에게 시달리게 된다. 앗수르가 망하고 나니 애굽도 유다를 넘보기 시작해서 남유다는 바벨론과 애굽 사이에 끼어서 고통을 당하게 된다.


바벨론의 나보폴라살(느부갓네살의 아버지)이 앗수르의 중요한 도시들을 차례로 치고 올라오다가 유프라테스강 상류와 티그리스강 상류 사이에 위치한 갈그미스를 점령하는 전쟁을 한다. 당시 애굽과 메소포타미아(앗수르)는 서로가 서로를 넘보는 사이였는데 앗수르가 쇠약해진 틈을 타서 메소포타미아를 점령하려고 하자 바벨론과 맞붙게 된다. 이 갈그미스 전투가 BC 609년이었다.


애굽 군대가 갈그미스에 가려면 수백마일을 북진해야 하며 남방 유다 땅을 거쳐야 한다. 바로느고가 북이스라엘 영토인 므깃도라는 곳에 가 있을 때 남방 유다의 왕이었던 요시야(16대)가 군대를 이끌고 쫓아 갔다가 죽게 된다. 역대하 35장 25절을 통해 보면 이 요시야의 죽음 때문에 예레미야가 애가를 지어 부르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시야가 죽은 후 바로느고의 군대는 갈그미스로 올라갔고 남유다는 서둘러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17대)를 왕으로 삼는다. 바로느고는 바벨론과 갈그미스 전투에서 승부를 보지 못하고 애굽으로 내려가는 길에 자신의 허락 없이 세워진 왕 여호아하스를 폐위시킨다. 3개월만에 왕이 바뀌게 된 것이다. 바로느고는 여호아하스의 형이었던 여호야김(18대)을 왕으로 세워 놓고 자기 수하로 두고 조정하려 한다. 이때부터 유다는 애굽에 조공을 바치며 애굽의 지배하에 들어간다.


이런 상황에서 BC 605년까지 유다는 애굽에게 복종해야 했다. 여호아하스는 애굽에 포로로 잡혀갔고 여호야김은 애굽에 조공을 바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BC 605년에 애굽과 바벨론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는데 이번에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이겼다. 이때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도 침공한다. 여호야김이 왕이된 후 만 3년이 지났을 때였다. 여호야김 왕궁은 애굽과 바벨론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섬기게 된다.


느부갓네살이 유다를 침략할 당시 아버지 나보폴라살이 바벨론에서 죽는다. 그는 급히 바벨론으로 돌아가면서 여호야김에게 바벨론을 섬기고 배반하지 말 것에 대해 단단히 경고했다. 이 때 다니엘을 비롯한 쓸만한 인재들을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아갔다. 이후 3년 후에 여호야김이 바벨론을 배반하게 된다.


3년 동안 바벨론을 섬기다가 여호야김이 바벨론을 배신한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을 섬기라고 권고하지만 매국노로 몰리게 된다. 여호야김이 바벨론의 정벌대에 의해 죽게 여호야긴이 왕위에 오르게 된다(대하 36:8, BC 597년). 여호야긴이 왕위에 오른지 3개월이 되었을 때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직접 쳐들어 온다. 이것이 2차 침공이다. 여호야긴은 얼른 항복했고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의 삼촌인 시드기야(20대, 요시아의 아들)을 왕으로 세워놓고 여호야긴의 온 집안을 바벨론으로 잡아간다. 이 때 왕가뿐만 아니라 유다의 실권자들과 병력, 기능공 등 약 일만명과 예루살렘 성전의 금기명들과 왕궁의 보물들을 바벨론으로 가져간다(왕하 24:8-16). 이것이 2차 침공, 포로이다. 이 때 에스겔도 함께 간 것으로 보인다.


힘과 권력이 있던 사람들, 나라의 인재라고 할만한 사람들을 다 잡혀가고 지극히 평범하고 힘없는 사람들만 다스리던 왕이 시드기야였다. 시드기야는 몰래 애굽왕 바로와 내통하면서 느부갓네살을 배반하게 되고 느부갓네살이 다시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공격해서 결국 함락되게 된다. 이 때가 완전히 예루살렘이 멸망한 때이다(Bc 586년).


하나님의 나라로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 이스라엘은 결국 분열되고 후에는 각각 멸망해 버리는 역사로 왕정시대가 끝나게 되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나라를 망하게 하셨지만 이후 다니엘, 에스겔 등의 삶을 통해 온 땅을 다스리는 진짜 왕이 하나님이신 것을 드러내고 계셨다. 느부갓네살에게 꿈을 꾸게 하셨고 다니엘을 통해 해석하게 하셨다. 에스겔을 통해 많은 환상을 보여주셨다. 다니엘과 에스겔을 통해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리라”는 것이었다.


눈에 보이는 나라는 망했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게 될 것이다. 에스겔은 예루살렘뿐 아니라 주변의 이방나라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예언하며 그 모든 나라들 위에 뛰어난 왕의 처소가 지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왕이 임하는 왕좌가 재건될 것임을 이야기한다. 이것이 다시 회복되는 성전의 개념이다.


성전 건축 이후 60년만인 BC 458년 에스라가 귀환하고 BC 445년 느헤미야가 귀환을 했다. 당시 사람들은 성전 완공으로 인해 집회장소가 마련되어 예배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지만 그들의 삶은 스가랴 7장에서 말한 삶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제사장들은 말 1:6-14과 2:1-9을 통해 보면 흠있고 병있는 짐승을 바치면서도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율법 집행을 편파적으로 해서 성직 품위를 훼손 시키고 있었다. 일반 백성들은 안식일을 무시하고 장사하고 있었고(느 13:15-22) 십일조를 내지 않아 레위인이 생계를 위해 직무를 버리는 일이 있었으며(느 13:10 이하) 신앙에 충실해도 득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살았다(말 2:17,3:13-15). 이혼이 성행 했으며(말 2:13-16) 임금을 착취하고 약한 자를 이용하며(말 3:5) 가난한 자들이 땅을 뺏기고 자녀와 함께 노예로 전락하게 만들었으며(느 5:1-5) 이방인들과 통혼을 했다(느 13:23-27).


느헤미야 시대에 역대기 기자는 이러한 사회 상황을 보면서 유다 백성들의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성전과 그들의 삶이 어떠한 관계가 있었는지를 다시 조명하면서 역대기를 기록하고 있다.


특별히 1-9장은 족보를 포함하고 있는데 이 족보는 창조부터 바벨론 포로 후대까지를 다 이야기하고 있다. 족보 단락만 염두에 두면 창조로 시작해서 포로 귀환 명단으로 끝이 나는데 이 귀환자들이 바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성전을 지으라는 고레스 칙령(대하 36:22-23)을 따라 성전을 재건한 장본인들이다. 결국 다시 말하면 족보 단락은 창조로 시작해서 성전을 재건한 장본인들로 끝이 나는 것이다. 이런 구조는 재건된 성전이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면서 시작한 사역의 지속 혹은 회복을 가리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성전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창조 이래로 이스라엘과 전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의도 안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역대기 전체의 큰 틀로 보자면 창세기를 요약한 족보(1장)와 에스라/느헤미야서에서 인용한 고레스 칙령(대하 36:22-23)로 둘러싸여 있다. 창세기와 에스라/느헤미야서는 이스라엘 역사의 시작과 끝을 가리킨다. 이런 면에서 역대기는 창조부터 시작해서 이스라엘 역사의 끝을 포괄하고 있다. 에덴에서 시작해서 또 다른 에덴, 즉 지성소의 의미가 확대되기 시작하는 재건된 성전으로 이야기가 끝나고 있다. 재건된 성전이 창조 이후 지속된 하나님의 중요한 관심사가 성전, 특별히 지성소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역대기는 1-9장까지 족보를 이야기한 후 바로 다윗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가면서 이스라엘의 첫번째 왕인 사울에 대한 이야기는 건너뛴다. 다윗을 이야기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이동하는 것이다(대상 13-16장). 다윗이 언약궤를 옮겨오길 원한 이유는 “법궤 앞에서 묻기” 위함이었다(대상 13:3). ‘법궤 앞에서 여호와께 묻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었음을 다윗은 알았다. 사울과 다윗은 여러모로 다른 점이 많았지만 가장 다른 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하나님과 소통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다윗은 하나님과 소통하는 왕이었다. 그는 ‘예배’하는 사람이었고 사울은 그렇지 못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또 이스라엘의 왕의 혈통은 다윗 계통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기 때문에 사울에 대해서는 역대기 기자가 자세히 다룰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은 장막에 거하는데 자신은 궁궐에 거하는 것으로 인해 마음아파했고 성전을 짓기를 갈망했다(삼하 7:2). 그래서 다윗은 성전을 짓기 위해 필요한 재물들을 준비한다.


솔로몬에 대한 역대기의 기록 역시 성전을 위주로 되어 있다. 솔로몬의 지혜는 성전 건축에 없어서는 안 될 준비 요소였다. 솔로몬의 성전 구조(대하 3-4장)는 광야의 회막 구조(출 36-39장)에 따라 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어쩌면 솔로몬은 모세의 장막의 지성소의 의미를 하나님의 지혜로 알았는지도 모른다.


역대기 기자가 성전에 관심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성전 건축 기사 자체는 열왕기보다 짧게 기록하고 있다. 오히려 역대기 기자는 성전 건축 자체보다 성전 건축으로 인해 보여진 하나님의 영광(대하 5:13-14, 7:1-3)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솔로몬의 성전의 의미는 이동하던 성전이 한 자리에 있게 되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언약궤를 시온에서 예루살렘으로 메어 올리면서 이스라엘의 온 족장들을 소집했고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이 성전 봉헌을 하기 위해 모였다. 언약궤를 지성소에 넣고 나올 때 하나님의 영광이 눈에 보이게 나타났다. 이 때 모였던 모든 백성들이 그 영광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역대기 마지막 부분에서 또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유다의 마지막 네 왕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에 대한 기록들이 열왕기에 비하면 양이 반이하로, 특히 시드기야의 기록은 90% 이상이 줄어서 기록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 네 왕의 공통적인 기록의 내용은 등극-악행-망함으로 끝나고 있다. 시드기야의 경우는 포로된 이유가 첨가되어 나타나는데 그것은 ‘겸비치 않고 목을 곧게 하고 여호와께 돌아오지 않은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어쨌든 포로로 잡혀감을 통해 이스라엘이 패배하고 하나님이 패배한 것처럼 보였지만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다(대하 36:21).

역대기가 성전을 중심으로 되어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그곳에서 회개와 용서가 일어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역대기에서는 범죄한 왕들과 백성들이 성전에 나아와 겸비하고 기도하며 회개할 때 죄를 사하시고 땅을 고치신 일이 여러번 반복되어 기술되어 있다. 역대기 기자는 성전 예배야말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의 정체성 의식을 회복하는 가장 분명한 희망이라고 보았다. 히스기야와 요시야가 지킨 유월절 예배에서 이것이 잘 드러나고 있다(대하 30:1-13, 35:17-18).

역대기가 성전을 중심으로 되어 있는 것은 이스라엘의 역사가 성전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 성전에서 회개와 용서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역대기 기자는 성전예배야말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이스라엘이 정체성을 회복하는 가장 분명한 희망이라고 본 것이다.


역대기가 기록될 때의 사회상을 다시 생각해볼 때 역대기의 기자는 성전 예배가 회복되어야 하는 것을 역대 왕들의 기사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모든 감동하심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기억할 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었다. 하나님은 역대기를 통해 역대기를 읽는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얼마나 이스라엘, 즉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와 함께 '거하기를' 원하시는지를 알게 하시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