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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예배강의

예배와 성경(44) - 지성소

by 처음사랑 2015. 10. 18.



지성소

이스라엘 전체 진의 정중앙은 항상 회막이었다. 성막의 출입문과 번제단, 물두멍의 방향은 동편이었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 했다.


지성소는 정육면체였다. 예언서에 나타나는 정육면체는 지성소를 상징한다. 솔로몬의 성전에서는 지성소가 성막의 지성소보다 부피로 8배가 커졌다. 예언들은 솔로몬 성전이 무너진 후 쏟아지기 시작한다. 시내산 언약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이었다. 언약의 문서를 만들어 돌판에 기록했다. 그런데 솔로몬 성전이 무너진 후 눈에 보이는 하나님과의 언약이 사라졌기 때문에 예언이 시작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직접 하셨다. 그것을 보관하는 궤가 언약궤이고 그곳에 하나님께서 임하시며 그것이 놓여지는 장소가 지성소였다.


성전이 무너진 후 하나님은 새로운 계시를 주셨다. 사람이 언약궤가 된다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돌이나 종이에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기록하셨기 때문에 그 언약이 마음에 기록된 사람이 언약궤가 되어지는 것이다. 그 사람이 있는 모든 곳이 지성소가 되는 것이다.


시내산 언약과 예레미야의 새 언약은 둘 다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언약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시내산 언약은 십계명과 그것을 기록한 돌판이 필요했고, 그것을 넣을 궤와 그 궤를 놓을 장소가 필요했다. 하나님께서 임하실 눈에 보이는 장소가 필요했다. 하지만 새 언약은 그 율법을 마음에 새기게 되고 그것은 사람이 언약궤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기록하신 마음을 가진 사람, 즉 바울의 말처럼 성령의 인치심을 받은, 영접한 사람들이 언약궤가 되는 것이다. 그들이 있는 곳이 지성소인 것이다. 지성소가 되기 위한 유일한 조건은 언약궤이다. 하나님은 이제 나무로 된 궤 위에 임하시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에게 임하시는 것이다.


스룹바벨 성전에 와서 지성소는 수천배 수만배로 팽창했다. 그것은 우리가 있는 곳이 지성소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에서와 집에서의 모습이 동일해야 한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다. 하지만 하나님은 두 그룹의 날개 사이에 임하시겠다고 하셨다. 어디에나 계시지만 여기에 임하시라고 기도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는 특별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가는 곳도 나로 말미암아 그곳은 지성소가 된다. 언약궤가 그저 놓이기만 하면 지성소가 된다. 우리가 그저 밟기만 하면 지성소가 되는 것이다. 지성소를 만들고 싶은 장소가 있는가. 나라가 있는가. 내가 언약궤라면 그곳에서 예배도 못하고 기도도 못한다 할찌라도 그곳을 밟기만 하면 지성소가 되는 것이다. 선교는 일이 아니다.

스룹바벨 성전에서의 지성소는 어디였을까. 그곳에서 지역적인 지성소는 있었다. 그러나 그곳이 지성소가 아니라 사람이 있는 모든 곳이 지성소였다. 스룹바벨 성전에서부터 지성소, 성전, 언약궤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바뀌고 있는 것이다. 


지성소는 성막의 10규빗에서 솔로몬 성전의 20규빗으로 8배가 성장하더니 스룹바벨 성전 당시에는 예루살렘으로, 예수님 당시에는 이스라엘 나라 전체로, 그 후에는 모든 민족과 열방으로 뻗어가게 된다. 그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