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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예배강의

예배와 성경(7) - 홍수

by 처음사랑 2015. 1. 11.




주일 아침.

갑자기 생각나서 올립니다.

정리할 시간이 없는 관계로 공부한 내용을 그냥 올립니다.


홍수 심판의 이유(6:5-8)


여호와가 인류를 보셨다(5절)

b. 여호와가 후회하셨다(6절)

c. 여호와가 말씀하셨다: ‘쓸어 버리겠다’(7절a)

b’. 여호와가 후회하셨다(7절b)

a’. 여호와가 노아를 보셨다(8절)


5-8절까지의 구조는 이렇게 대조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실 때’는 선과 아름다움이 탄생했지만 사람이 세상을 ‘만들어갈 때’는 악과 부정이 가득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세상의 악을 보셨고(5절) 아픔을 느끼셨으며(6절) 인류를 쓸어 버리기로 결정하셨다(7절). 하나님의 ‘후회’는 인간의 감정과 다르게 해석된다. 하나님의 후회는 함께 교통하기 위해 창조한 인간의 범죄와 반역으로 인해 배신감을 느끼는 아픔이다. 탄식하시고 아파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류를 쓸어 버릴 것을(7절) 결정하셨지만 노아의 가족에게 은혜를 베푸셨다(8절). 에녹은 타락한 세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하여’ 죽음을 맛보지 않았고 노아 역시 자기 세대를 본받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했기에(9절) 심판으로 인해 ‘죽지’ 않았다. 하지만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이라고 창세기의 저자는 말하고 있다(8절).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마저도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심판과 방주(6:13-7:10)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가족들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결정하셨지만 그들의 생명을 유지해 줄 수단인 방주는 그들 스스로 만들어야 했다(6:14).


방주를 만들라는 하나님의 지시 안에서 ‘방주’라는 말이 5차례 등장하고 물이 줄어드는 세상을 회고하는 8:1-14에서는 7차례 사용된다. 이곳 외에서는 모세가 실렸던 갈대상자를 의미하며 한 번 더 사용된다(출 2:3-5). 방주의 크기는 300규빗*50규빗*30규빗으로 길이 135미터, 폭 22미터, 높이 13미터의 크기이다. 농구장 20개를 10개씩 2열로 배열한 규모이며 4만 3000톤의 적재량을 가진다. 이 정도 공간이면 현재 생존하는 생물체(포유류, 조류, 파충류 등) 1만 7600여 종의 암수 한 쌍씩, 3만 5200마리의 동물을 싣는다고 해도 방주의 약 1/3만 차지하게 된다고 한다. 이 방주의 크기는 후일에 지어질 성막 뜰의 세 배 크기이다.


방주에 들어갈 짐승은 정결한 짐승은 암수 7쌍, 부정한 짐승은 암수 1쌍씩이었다. 정결한 짐승은 홍수 후 제사의 제물과 곡식과 채소가 수확될 때까지 노아의 가족이 먹고 살 수 있기 위함이었다. 그렇다면 노아는 어떻게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구분할 수 있었을까. 창세기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홍수 이전 사람들과 이스라엘의 선조들이 율법을 받기 이전에도 율법을 준수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었을 때 그것이 그동안 이 세상의 어느 민족도 전혀 모르던 새로운 것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상당 부분 이미 존재하던 것을 체계화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노아가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짐승들과 함께 방주에 들어간 후 7일 후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유대의 문헌들은 그 1주일이 므두셀라의 죽음에 대한 애도기간이라고도 하고, 세상의 죽음을 지켜보셔야 하는 하나님의 애곡기간이라고도 하며, 인류에게 마지막으로 회개할 기회를 한 번 더 주신 것이라고도 한다.


홍수는 비가 처음 내리기 시작한 후부터 40일간 계속 되었다. 40은 성경에서 긴 시간을 상징하며, 새로운 시작을 예고하기도 한다. 이삭과 에서가 40세에 결혼을 했고 모세는 시내 산에서 40일을 머물렀으며 모세의 삶 전체는 40-40-40으로 나뉜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탐한 기간도 40일이었으며 이 일로 인해 광야에 머물게 된 기간도 40년이었다.


심판의 물결(7:11-24)

노아가 600세 되던 해 2월 17일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이듬해 1월 1일에 땅이 말랐고(8:13), 2월 27일이 되어서야 노아와 가족들이 방주 밖으로 나왔다(8:14-19). 


7일 동안 기다림(7:4)

7일 동안 기다림(7:10)

40일 동안의 홍수(7:17)

150일 동안 물이 범람(7:24)

150일 동안 물이 빠짐(8:3)

40일 동안 기다림(8:6)

7일 동안 기다림(8:10)

7일 동안 기다림(8:12)


노아는 120년 동안 방주를 지으며 온갖 멸시를 겪었을 것이다. 어쩌면 가족들에게도 멸시를 당했을지도 모른다. 심판과 회개를 외쳐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노아와 그의 가족들에게는 구원의 날이었지만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는 심판의 날이었다. 아니, 비가 오는 첫날은 노아의 가족들에게는 구원의 날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을지도 모른다. 물이 세상을 덮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심판’을 깨닫기 시작해서야 노아는 미친 사람이 아니었음이 밝혀지게 될 것이다.


유대인의 달력은 1년이 364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각 날짜는 매년 동일한 요일이었다. 천지창조는 주의 첫째 날인 일요일에 시작되었다. 홍수는 역창조라 할 수 있는데 이 역창조의 시작도 주일이었다. 창조가 끝난 것이 금요일이었고 홍수도 금요일에 끝났다.

하나님은 방주의 문을 닫아 주시는 일을 마지막으로(16절) 물이 세상을 휩쓰는 동안 나타나지 않으신다.


노아가 방주를 떠남(8:1-19)

1절에서 하나님은 노아와 방주에 있는 짐승들과 가축을 ‘기억’하셔서 땅 위에 바람을 불게 하셔서 물이 줄게 하셨다. 이 ‘바람’은 천지창조 기사에 나타나는 ‘영’과 같은 단어 ‘רוח’이다. 


방주 안에 있는 노아와 가족들은 비가 내리는 소리, 물에 빠져 살려달라고 외치며 죽어가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으며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두려움 가운데 있었을 것이다. 방주는 노아와 가족들이 방향을 조정할 수 없었다. 불안하게 떠다니는 와중에 방주 밖에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물을 마르게 하는 바람은 아무런 소리도 없이 선선하게 부는 것이 아니라 폭풍처럼 몰아쳤을 것이다. 노아와 가족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또다른 분노로 느껴졌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 그것은 노아와 방주 안의 모든 사람과 동물을 ‘기억’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었다. 하나님은 하박국 3:2의 말씀처럼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예배와 약속의 말씀(8:20-22)

방주에서 나오자마자 노아가 제일 먼저 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예배였다(8:20). 가인과 아벨 시대에도 제단에 예물을 드렸지만 ‘제단’이라는 용어가 성경에서 사용된 것은 이곳이 처음이다. 노아는 이 제단에서 번제를 드렸는데, 이 단어 역시 이곳에서 처음 사용되고 있다. 7쌍씩 실었던 정결한 짐승이 제물이 되었을 것이며 홍수 이후 당장 먹을 채소와 곡식이 없을 때 그 정결한 짐승을 먹이로 주셨다(9:3). 정결한 짐승을 7쌍씩 방주에 태운 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은혜를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심판을 은혜로 마무리하신다. 창세기에서 ‘심판을 은혜로’ 마무리하신 것은 이미 두 차례 사용된 패턴이다. 아담과 하와를 심판하신 후 그들에게 메시아의 약속을 주셨고(3:15), 그들의 부끄러움을 가릴 수 있는 가죽옷도 주셨다(3:21). 가인에게 심판을 선언하신 후 사람들의 보복을 두려워하는 가인에게 그 누구도 해할 수 없는 증표를 주셨다(4:15). 창세기의 저자는 이러한 사건들에서 하나님의 심판 뿐만 아니라 ‘은혜’를 강조하며 ‘여호와 이레’의 은혜를 부각시키고 있다.


하나님은 노아의 예배를 받으신 후 자연과 인류에게 축복하셨다(21-22절). 인간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시겠다는 것과 홍수 때처럼 모든 생물을 멸망시키는 일이 다시는 없으리라는 약속을 주셨다. 만약 인간 때문에 땅을 계속 벌하셨다면 이 땅에 살아 남아 있는 것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또한 이제는 공동체적, 사회적 차원에서의 벌하심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죄 문제에 대처하실 것을 암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