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배/예배강의

예배와 성경(8) - 바벨탑

by 처음사랑 2015. 1. 14.




열방과 바벨탑(10:1-11:9)

열방을 나열하고 있는 목록(10:1-32)과 바벨탑 이야기(11:1-9)로 구성된 이 부분은 같은 단어의 반복적인 사용 등 언어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함께 읽혀지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열방 목록과 바벨탑 이야기는 시대 순서가 뒤바뀐 것으로 간주된다. 이것은 10:5,20,31 등에 반복되는 ‘지역과 언어가 갈라져 나갔다’는 말 때문이다. 이 해석에 의하면 바벨탑 사건은 에벨의 아들 벨렉의 시대에 있었던 일이다.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나뉘다)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창 10:25


하지만 이렇게 시대 순서를 바꾸어 기록한 것에 대한 명확한 이유를 찾지 못하는 이유로 인해 다른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창세기 10-11장이 역사적인 순서로 기록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이렇다.


바벨탑 사건이 있기 전에 이미 세상의 언어가 나뉘고 있었고 바벨탑 사건으로 인해 빚어진 언어의 혼선은 ‘통용어의 혼선’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바벨탑 사건 이전에 이미 각 종족이 사는 지역에 따라 언어가 나뉘고 있었는데 각 종족의 고유언어와 함께 통용되는 언어가 존재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 해석은 10장과 11장을 순서 그대로 읽는다는 것과 각 종족의 고유언어가 죄에 대한 심판의 결과가 아니라 민족들이 분리되면서 빚어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본다는 점이다. 성경 전체에서 종족들이 각각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혹은 죄의 결과로 평가되지 않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 해석이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다.


10장의 계보는 어떤 의미일까. 창세기의 저자는 끊임없이 족보를 거론함으로써 뿌리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창세기를 당시에 처음 접하고 읽고 있는 사람들은 노예로 살다가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자신들이 왜 현재 광야에 있으며 무엇을 위해 광야를 걷고 있는지를 족보를 통해 깨닫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람들에게 계보는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최초의 인류와의 관계를 밝혀주는 중요한 것이었다. 또한 저자는 계보를 통해 계속되는 하나님의 선택을 강조하고 있다. 아담에게 있었는 가인, 셋, 그 외의 아들 중 셋을 통해 태어난 노아에게서 인류가 다시 시작되었다. 


노아의 세 아들이었던 셈, 함, 야벳 중 셈을 택하셨다. 셈에게도 두 무리의 자손이 있었고 에벨에게는 욕단과 벨렉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으며 이 중 벨렉을 택하셨고 벨렉의 5대손이 아브라함이었다. 성경은 하나님의 선택이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은혜였던 것이다.


인류는 바벨탑 사건을 통해 에덴 동산에서보다 더 큰 죄를 지었다. 에덴 동산에서 인간은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죄를 지었고 바벨탑에서 인간들은 하나님의 고유 영역을 침해하는 반역을 행했다. 당시 사람들은 ‘동쪽’으로 가고 있었다(11:2). 


창세기에서 ‘동쪽’은 분리되고 쫓겨나는 사람이 가는 방향이다. 죄를 짓고 쫓겨가는 곳이거나 죄를 저지르기 위해 가는 곳이다. 아담도 죄를 짓고 에덴의 ‘동쪽’으로 쫓겨 갔고 가인이 아벨을 살해하고 역시 ‘동쪽’으로 떠났다. 롯이 아브라함과 헤어질 때 ‘동쪽’으로 가서 소돔과 고모라 지역에 정착해 살았다. 창세기에서 동쪽은 죄, 혹은 죄의 대가와 연결된 곳이다. 동쪽으로 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과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가나안 사람들은 건물을 지을 때 벽돌을 사용하지 않고 주변에 널려 있는 돌을 깎아 사용했다. 하지만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주전 4000년대부터 벽돌을 만들어 사용했다. 진흙으로 만든 벽돌을 말리거나 불에 구워서 사용했는데 이런 벽돌로 지구라트(Ziggurat)를 건설했다. 창세기 저자가 시날에 정착한 사람들이 탑을 쌓기 위해 벽돌을 만들었다는 것을 기록하는 이유는 벽돌로 건물을 건축하는 일에 생소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메소포타미아의 건축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의 ‘흩어지라’는 명령을 어기면서 탑을 쌓는 것은 이들의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님의 고유 영역을 침해하는 것임을 알게 한다. 그들은 탑을 통해 ‘자신들의 이름을 남기는 것’과 ‘흩어지는 일을 예방하는 것’을 이루려 했다. 그들은 ‘반역자로써의 이름’을 남겼고 ‘강제로 흩어짐’을 당했다.

노아의 아들 셈(shem, שמ)은 이름, 명예를 뜻하는 단어와 스펠링이 같다. sham(שמ)은 ‘그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shem의 자손들은 sham에 정착했고 그곳에 자신들의 이름(shem)을 남기기 위해 탑을 쌓았다.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란시키기 위해 하늘에서 그곳(sham)으로 내려 가셨고 그들을 그곳(sham)에서부터 세상으로 흩으셨다. 그곳(sham)은 바벨이라 이름 지어졌고 사람들은 그곳(sham)에서 흩어졌다. 그들은 이름(shem)을 남기지 못하고 그곳(sham)으로부터 온 땅으로 흩어졌다.


원래 바벨은 ‘혼잡하다, 혼동하다’에서 유래한 단어로 ‘혼란’이라는 뜻이다. 바벨은 곧 바벨론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바벨론은 원래 아카디아어 bab-ilu(gate of god;신의 문)에서 유대된 이름이었지만 창세기 저자는 이 ‘신의 문’을 ‘혼란’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모세가 바벨탑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교훈하는 것은 이렇다. 앞으로 그들은 가나안 사람들이 지어놓은 높은 성벽들로 둘러 쌓인 성읍들을 정복해야 한다. 옛적에 ‘하늘에 닿았던’ 바벨탑이 하나님의 심판에 힘없이 무너졌던 것처럼 가나안 사람들의 성읍들도 하나님 앞에 무너지게 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게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말 것을 권면하는 것이다.


‘지구라트’를 실제 바벨탑으로 간주하는 학자들도 있다. 지구라트는 엘람, 바벨론, 수메르 등에서 유행했던 신전으로 주로 계단 형태를 취했다. 사람들은 이 계단을 ‘하늘에 있는’ 신들과 ‘땅에 있는’ 인간을 연결하는 통로로 간주했다. 계단들을 따라 올라가면 맨 위에 신전이 있었으며 일부 지구라트는 높이가 50미터 이상 되었다고 한다. 현재 남아 있는 유적인 지구라트를 배경으로 바벨탑의 사건을 볼 때 인간들이 ‘이름을 남기고 흩어짐을 면하자’는 목적 자체를 이루는 것을 하나님이 아닌 인간 자신의 힘, 혹은 당시 그 사람들이 홍수를 지나면서 섬기게 된 ‘달’에 의지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즉 천지를 창조하시고, 심판하시고 재창조하시는 온전한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외면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