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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예배강의

예배와 성경(9) - 아브라함의 부르심

by 처음사랑 2015. 1. 16.


창세기의 내용의 흐름을 보여주는 지도 [테리홀, 성경파노라마 발췌]

아브라함이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가려면 위로 올라가서 하란을 경유해서 나 있는 길로 가야했다.


아브라함의 예배 - 부르심을 따라 떠남

하나님께서 아브람이라는 사람을 부르셨다. 그가 살던 땅은 갈대아 우르라는 땅이었다. 아브람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우르와 하란 두 곳은 모두 달신과 관계가 있는 땅이었다. 1900년대 초 갈대아 우르 지역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이 이루어졌는데 그곳의 가장 큰 특징은 ‘지구라트’라는 신전형 건축물이었다. 지구라트는 ‘높은 곳’, ‘신전 탑’을 의미하는 단어로 고대 메소보타미아의 각 지역마다 건축되어 신들을 섬기는 예배 장소가 되었는데 가장 튼튼하고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는 곳이 갈대아 우르의 것이다. 높아지면서 좁아지는 형태였던 바벨탑의 맨 위쪽에서는 달신 ‘난나’를 섬겼다. 달신을 섬긴 이유는 홍수 후에 그들이 달이 물과 연관이 되어 있는 신(조수간만의 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달의 모양이 변할 때마다 조수간만의 차가 생기는 것을 관찰하고 달이 물의 움직임을 주관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영국의 레너드 울리(1880-1960)는 성경에서 언급된 우르를 발굴하면서 아브람 당시의 생활상을 밝혀냈는데 특이한 것은 당시 사람들이 유목민족이 아니라 도시생활을 하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우르 지역에서 발굴된 무덤에서 나온 장신구들과 당시 도시 터의 발굴에 의하면 잘 살던 사람은 14개의 방이 있는 2층 집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일 정도였다. 1929년 3월 17일자 미국 뉴욕타임스의 머릿 기사는 ‘우르의 발굴, 새로운 아브라함의 발견’이었다. 이 내용에 따르면 한 부분이 아브라함은 유목민이 아니라 도시에서 살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가 가지고 있던 도시의 수많은 지식과 기술들, 천지창조와 홍수의 전승들이 자손들에게 전해졌다고 이야기되고 있다. 그 모든 지식은 아브라함의 아들과 그 아들을 거쳐 내려갈 수 있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였던 데라에 대한 짧은 기록이 여호수아 24:2에 나타난다.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여호수아 기자가 굳이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다른 신들을 섬겼다'라고 기록한 것은 단순히 당시 사람들처럼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었다고 보기보다는 우상을 섬기는 일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람이었다고 보는 것이 좋다. 그렇게 볼 때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섬기는 일을 주도적으로 하는 제사장이었거나 우상을 섬기는 신전의 일을 하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신 근동 지역은 계급이 존재하는 사회였는데 가장 높은 계급이 신전의 제사장이었고 그 신전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 역시 높은 계급에 속하여 많은 부를 누릴 수 있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집안은 단순히 도시에 사는 정도가 아니라 그 도시에서 어느 정도의 권력과 부를 가지고 살던 지배계층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창세기 11:31-32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이 구절을 통해서 볼 때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주시려고 처음에 부른 사람은 아브람이 아니라 데라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위에 말했듯이 도시 생활에 익숙해져 있으며, 더구나 그 도시에서 부와 권력을 가지고 편안한 생활을 하던 데라와 가족들이 가나안 땅을 향해 갈 때 옮겨다니면서 유목생활을 해야하는 여정은 불편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가다가 비슷한 규모의 도시인 하란을 지날 때 가나안으로 가던 여정을 포기하고 하란으로 들어가 다시 도시에서의 정착생활로 돌아간 것이라 생각된다. 하란은 아모리족의 중심지였으며 매우 중요한 상업 도시였고 달신 ‘sin’의 신전이 있던 곳이었다. 


이미 부르심을 포기한 데라 대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인 아브람을 창세기 12장에서 부르시고 계신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창 12:1


데라가 205세에 죽었음을 감안할 때 70세에 아브라함, 나홀, 하란을 낳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75세에 아버지의 집을 아브라함이 떠났을 때 데라는 살아 있었을 것이다. ‘가족과 부모를 떠나라’는 말이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것이다.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는 것은 그의 몫으로 돌아올 유산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본토를 떠나라’는 의미는 과거를 완전히 정리하고 새로운 곳으로 떠날 것을 의미한다. 그는 본토를 떠난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고 아들 이삭의 아내를 찾을 때에도 이삭을 보낸 것이 아니라 종을 보냈을 뿐 아들이 가나안 땅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했다.


아브람의 믿음은 75년간의 ‘도시생활’을 과감히 떨치고-아버지 데라가 먼저 부르심을 받았다고 보여지지만 그는 가나안으로의 부르심을 포기하고 하란에 거하다 205세에 죽었다-자신이 살던 익숙한 땅을 떠나 가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145살이 된 아버지와 함께 살던 땅-그만큼 생활 기반이 확립되어 있던 땅-을 떠날 수 있는 믿음을 가졌었던 것이다.


아브람의 예배는 자신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환경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과감하게 포기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우리의 예배 역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환경이나 물건, 재물 등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포기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제단을 쌓고 예배하는 일이었다. 도시의 안정적인 생활을 뒤로 하고 가나안 땅에 왔는데 사실 아브람의 눈에는 자신의 소유라고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께 단을 쌓고 감사하고 있다. 이것이 또 하나의 아브람의 믿음이었다. 하나님께서 가라는 땅에 갔는데 아무것도 없는, 하나님이 아무것도 준비해두시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그 땅에서도 아브람은 감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역시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일을 했는데도 오히려 소유는 더 적어지고 내게 돌아오는 열매는 없는 경우를 만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고 예배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드려야 할 예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