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인 오늘.
월요일에 이사를 마치고 이래저래 짐 정리 하고 필요한 것들 마무리 하느라 정신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1991년부터 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해서 중간에 3년 정도 직장을 다녔던 것을 제외하면 23년 정도를 교회와 선교단체에서 사역을 하며 살았다.
내 집을 가지는 것이 정말 멀게만 느껴졌었는데
어찌어찌 해서 하민이가 태어날 즈음 임대 아파트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아파트가 부도가 나면서 어쩔 수 없이 내 집 마련을 하게 되었다.
전주 집을 팔고 김제로 이사하면서 아파트 값이 더 쌌던 김제 지역의 물가덕에 어쩔 수 없이 내 집 마련을 하면서 지고 있던 빚도 청산.
자유의 몸이 되었다.
전주에서 사역을 하게 되면서 전주로 이사를 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고 김제 집을 부동산에 내놓고 전주 집을 찾아보기로 했다.
전에 사역했던 교회에서 지역 아동센터를 위해 건물을 샀고 그 건물 5층에 빈 집이 있다며 그곳을 사용하는 것은 어떠냐고 강목사님께서 제안하셨다.
사실 그 교회 뒤에 있던 교회 소유의 작은 2층 집을 사용해도 된다고 허락을 받았었는데 다른 목사님께서 먼저 그곳으로 이사를 해버리셔서 갑자기 이사할 집이 없어진 상태였다.
이 집을 처음 보았을 때는 심란하기 그지 없었다(이전 모습은 아래 포스팅 참고).
2주 반동안 직접 공사에 뛰어 들어서 난생 처음 여러가지 일을 해봤다.
벽에 석고보드도 붙여보고 몰딩도 붙여보고 조립식 지붕 위에 올라가(7층 높이인데 더 높아 보인다) 나사도 박아보고.
콘센트와 스위치도 직접 갈아보고(스위치 선이 전기가 들어와 있는걸 모르고 뺀치로 자르다가 감전될 뻔;;) 전등도 직접 구입해서 달았다.
그라인더로 철제 프레임도 잘라보고 나무결도 다듬어 보고 합판, 조립식 건축 자재 등도 잘라봤다.
이름도 기억 안나는 여러가지 도구들을 사용해봤다.
감히 직접 할 엄두가 안나는 싱크대, 화장실, 도배, 장판은 여기저기 경로로 저렴하게 할 수 있었다.
40평이 넘는 집.
내가 평생 돈을 벌어도 마련할 수 없는 집.
직업을 바꿔야 마련할 수 있는 집.
그런 집을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셨다.
김제에 있는 아파트를 팔면 5,500만원-6,000만원 정도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여기 리모델링 하는데 들어간 돈만 2,500만원 이상.
이 집의 전세금으로 목사님께 드릴 수 있는 돈은 3천만원이 채 안될 것 같다.
그 말은 이 집에서 나가게 되면 남는 돈은 3천만원이 채 안된다는 이야기.
이 땅에서의 집은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고 살았지만 나이가 들어갈 수록 나와 아내가 열심히 사역하다가 쉴 공간 정도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나님은 그 생각에 맞게 집을 주셨었고 이제는 분에 넘치게 넓은 집을 주셨다.
이 집이 나와 아내가 오랫동안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집이 함께 동역하는 사람들이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집이 나의 지인들이 아무때고 찾아와 편하게 이야기하다 갈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집이 머나먼 타국에서 고생하며 사역하신 선교사님들이 전주에 왔을 때 잠시라도 편하게 쉬시고 갈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이 집이 내가 열심히 공부하는 성경과 예배에 대해 함께 사람들과 나누고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싱크대와 식탁등.
싱크대는 아내가 평생 꿈꾸던 스타일로 직접 디자인을 제안해서 만들었다.
식탁등은 원래는 엄청 비싼 디자인이라는데..
인터넷을 열심히 뒤졌더니 5-6만원 선에서 마련할 수 있었다.
온 집안의 등 중에 가장 비싼 등.
이 넓은 거실에 아내는 아무것도 놓지 말자고 한다.
당분간은 저 작은 테이블만 있을 예정.
서재가 될 방.
여기에 현재 전에 살던 집에서 사용하던(전 주인이 낡아서 두고간) 촌스런 하얀 책상과 작은 컴퓨터 책상, 그리고 장롱이 들어와 있다.
컴퓨터 책상은 치우고 하얀 촌스런 책상은 상판만 떼서 다른 곳에 사용하고 커다랗고 내가 이것저것 펼쳐놓고 공부하기 좋은 책상 하나 놔야겠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가벽을 세운 안방.
안방 가벽 뒤.
옷방도 아니고 옷장도 아닌.
이사한 지금은 평소에 자주 입는 옷들이 잔뜩 걸려 있다.
저기 빈 전선에 센서등을 달았는데..
센서등이 정신이 나갔는지 켜면 꺼질 생각을 안하고 아무도 없는데 갑자기 혼자 켜진다.
그냥 오며가며 스위치를 이용해서 끄고 켜고 하는 중.
지네와 거미가 꿈틀댈것만 같았던 이 실외도 아니고 실내도 아니었던 애매한 공간이 방으로 바꿨다.
이 집의 처음 모습을 못 본 사람들, 이 집에 처음 온 사람들은 여기도 방인 줄 안다.
여기가 방인 줄 아는 사람들은 한번씩 여기에다 재워야겠다.
나름 열심히 고른 스위치와 콘센트.
필요없는 스위치, 전등을 없애면서 스위치를 다시 해야 했고 하는 김에 콘센트도 같은 디자인으로 다 갈았다.
근데 저 콘센트는 예쁘긴 한데 너무 헐겁다.
대략 하나에 5천원선.
난 분명히 LED 에디슨 전구를 찾아 들어가서 구입했는데 필라멘트가 구입이 됐다.
일주일도 안돼서 촛대형 에디슨 전구는 아웃.
이 전구 두개가 실용성을 떠나 과소비한 것이었는데 보람도 없이 하나가 나가버려서 아쉽다.
싱크대, 벽, 작은 방, 출입구 등에 아내가 미리 주문한 것들로 레터링을 했다.
새벽 두시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레터링을 붙였더니 여기저기 비뚤어지고 난리다.
다시 떼면 벽지를 버리니 뗄 수도 없고.
그냥 참고 살아야지.
오래오래 쓸 생각으로 되도록 좋은 것을 구입하려고 노력했다.
분에 넘치는 것이라면 빼긴 했지만 싱크대와 보일러는 과분하다 싶은 것이지만 그냥 주문했다.
싱크대는 나 때문에 23년의 결혼생활 동안 몸고생, 마음고생을 한 아내에게 선물로 주고 싶었다.
내가 준 것도 아니지만.
보일러도 이전 집에서 계속해서 고장나고 신경쓰이게 했던 것이 생각나서 잔고장 없고 사용하기 편리한 보일러를 시공했다.
밖에서도 스마트폰으로 보일러를 조절할 수 있어서 한겨울에도 포근한 집으로 들어올 수 있을 것 같다.
아직도 이것저것 손봐야 할 곳이 많은 집이지만 그래도 일단 이사할 수 있을 정도로 공사가 마무리 되었다.
내일부터는 먼 나라에서 9명의 손님이 우리 집에서 머물게 된다.
아직 도시가스가 설치가 안되어서 불편하지만 좋은 추억의 시간이 될 것 같다.
이 집에 살게 된 것이 큰 은혜이다.
어떤 사람들이 돈도 많이 못 벌고 여기저기서 후원받은 헌금으로 사는 내가 40평이 넘는 집에 살게 돼서 시험에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내도 나도, 이 집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내 것으로, 우리 것으로 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선물.
이 집에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고, 쉬고 먹고, 이야기하고 울고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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