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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예배에 대하여

교회 찬양인도

by 처음사랑 2011. 10. 30.
내가 개인적으로 다니는 교회에서도, 예수전도단 사역을 하면서 외부사역을 할 때에도
가장 까다로운 예배인도가 전교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회찬양인도인 것 같다.
콘티.
콘티가 예배를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생각하고, 배워왔고, 경험해 왔지만
전교인이 함께 있는 곳에서의 예배인도를 위한 콘티는 정말 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며칠 전에 있었던 성시화 운동 집회 역시 그랬다.
찬송가로만 할 것이냐, 나이가 조금 있으신 분들도 알만한 예배곡들을 넣을 것이냐를 가지고 한참을 고민했다.
콘티도 한 다섯 번 정도 수정했었던 것 같다.
결국 네다섯 곡의 콘티 중 두 곡만으로 이십여분 정도를 예배하고 내려오긴 했지만 또 한 번 예배는 콘티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하시는 것이라는 것을 배웠다.

우리 교회는 4-50분 정도를 기타 하나로 예배한다.
근래에는 목사님 아들에게 젬베를 가르쳐서 젬베도 함께 사용하긴 하지만 그래도 예배하면서 기타 연주를 멈출 수 없는 것은 여전하다.
기타 하나로만 예배하다보니 기타 연주를 중간에 멈추는 것이 한정되어 있다.
다른 세션이 있을 때에는 기타를 연주하지 않는 것이 자유로운데 우리 교회 예배처럼 한두가지 악기로만 하는 경우 연주를 쉬게 되면 모든 사람이 악기가 멈춘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쉬는 것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우리 교회에서 3-4년을 사역하면서 배우게 되는 것은 역시 악기 연주 자체가 예배를 크게 좌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있으면 풍성하고 좋겠지만 없다고 예배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 것을 늘 깊이 배우게 된다.

우리 교회에서도 역시 콘티의 문제는 있다. '전교인'을 대상으로 하는 예배가 매주 있다보니 사실 콘티가 한정적인 것도 사실이다.
우리 교회는 사실, 목사님을 포함한 모든 성도(일반 성도는 거의 없지만)들이 일반 예배찬양을 모르는 상태였다.
찬송가와 일부 유명한 '성가곡'을 제외하고는 '예수님 찬양'이나 '나 자유 얻었네' 같은 찬양들도 프리젠테이션을 해야 가사를 따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첫해에 교회에서 찬양을 인도할 때는 참 난감했다. 찬송가 말고는 성도들과 함께 자유롭게 예배할 수 있는 곡이 없었던 것이다.
다행인 것은 목사님을 비롯한 모든 분들이 모든 찬양에 열려 있었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 교인들은 '새 힘 얻으리'나 '아름다우신' 같은 캠퍼스 워십의 곡이나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네' 같은 아주 오래된 곡들을 다 같게 느낀다.
모든 예배곡을 모르기 때문에 최근에 알려진 곡이나 20년이 된 곡이 다 같은 것이다.
그런 점이 오히려 콘티를 짜기에는 좋았다.
문제는 이 곡들이 익숙해지는 기간이 문제였다.
워낙 찬송가와 같은 곡들, 즉 박자가 정박에 거의 떨어지는 곡들에 익숙하신 분들이기 때문에 요즘 곡들처럼 싱코페이션과 엇박자가 난무하는 곡들을 배우는 것에 상당히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화요모임에 늘 참석하면서 대부분의 찬양을 알고 있는 아내도 어느 날 들어보니 엇박으로 시작해서 싱코로 계속 가는 곡을 어느 순간에 정박자로 부르고 있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한두곡을 계속 콘티에 유지시키는 방법이었다.
4-5주 정도를 계속 콘티 안에 유지시키다 보면 어느 순간 성도들의 입술이 같이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그렇게 하기를 반복해서 요즘은 왠만한 곡들은 성도들도 알고 있게 되었고 콘티를 짜는 것에 있어서 이제는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찬송가', 그것도 아직은 나에게 익숙한 예전 찬송가 안에서 꼭 한두곡을 넣게 된다.
예수전도단의 표현대로 성도님들의 '정서가 풀리는' 곡들은 아무래도 찬송가 쪽이 강한 것을 느끼게 된다.
특히 우리 교회처럼 아주 작은 소도시, 거의 시골에 가까운 소도시에 있는 정말 작은 교회, 나이 드신 권사님도 계신 교회에서는 아무리 새로운 노래를 많이 반복해도 찬송가를 원하는 목소리들이 있기 때문이다.

교회에서나 화요모임에서나 예배하는 것은 같다.
하지만 '회중'을 먼저 생각하고 그 회중이 함께 동참하기 쉽도록 예배를 인도해가야 하는 것이 예배인도자들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현재 내 고민은 그것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 교회의 예배가, 전주화요모임이 하나님의 임재가 어디와도 비교할 수 없이 깊게 느껴질 수 있는 예배가 될 수 있을 것인가이다.
대충 그냥 예배하고 나서 '오늘 예배 좋았어요'라는 소리를 듣는 예배가 아니라 어디와도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임재가 있는 예배가 되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아서 우리가 예배하는 곳에 하나님의 발이라도 두실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찬양인도자들이, 예배인도자들이 고민해야 할 것은 오늘은 어떤 주제로 예배할 것인가, 어떤 노래를 사용할 것인가가 아니라
오늘 예배에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를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어떻게 기도하고 구해야 할 것인가인 것이다.

교회 찬양인도든 다른 곳의 찬양인도든 결국 콘티나 사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예배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가 아닌가가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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