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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예배강의

예배와 성경(37) - 금송아지 반역

by 처음사랑 2015. 6. 23.


인도 마이소르 Ashokapuram 슬럼 지역, 어느 한 성도의 집 벽에 그려져 있던 십자가


금송아지 반역


이스라엘과 금송아지(32:1-6)

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2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3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5 아론이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이에 아론이 공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6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사람들은 처음부터 아론을 찾아갈 때 부정적인 태도였다. 모세를 가리켜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1절) 이것은 히브리어 원문에 ‘이 사람 모세’라는 표현으로 나타난다. 이 표현은 상대방을 비하하는 불손한 말이다(삼상 10:27; 21:16; 25:21; 삼하 17:17). 그들은 자신들을 노예의 상태에서 끌고 나와 자유인의 신분을 얻게 해준, 하나님의 대리인인 모세를 비하하고 있었다. 그들이 모세를 비난하고 비하하는 것은 하나님을 비난하는 것이었다. 모세를 비난한 이후에 바로 하나님을 비하하며 송아지를 만들어 버리는 것에서 알 수 있다.


2절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의 아내와 딸들이 금귀고리를 많이 소지했다는 것도 하나님의 백성의 삶으로는 그리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 야곱은 라반의 집에서 돌아와 우상들과 함께 금귀고리를 땅에 묻은 적이 있다(창 35:4). 기드온은 백성들에게 금귀고리를 모아 에봇을 만들어 온 이스라엘로 하여금 실족하게 한 적이 있다(삿 8:24-27). 우상숭배와 금귀고리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당시의 금귀고리는 상당수가 우상의 형태로 조각되어 있었다. 아직 광야생활을 시작한 지 1년이 안된 시기였고, 십계명도 전달이 안되었을 때이긴 하지만 열가지 재앙과 홍해를 건너게 하시는, 만나를 내리고 반석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어야 할 물건들은 아니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을 위해 자신들을 인도할 신을 만들라고 아론에게 요구하고 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대신 ‘보이는 신’을 요구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대리인이었던 모세가 산에 올라가 소식이 없자 모세 없이 광야를 걸어 가나안에 들어가야 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한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인도하여 주는 신을 만들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우상숭배가 신을 조종하려는 욕심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그분의 뜻에 따라 움직이고 멈추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뜻과 소원을 이루기 위해 하는 것임을 기억한다면,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만들어 내려는 그들의 시도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원하는 소원을 이뤄줄 신을 만들어 조종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었다.


4절에서 아론은 송아지 형상을 만든 후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여 낸 신’이라고 표현한다. 그들이 겉으로 만든 것은 금송아지였지만 입술로 말하고 있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만든 금송아지의 형상은 애굽에서 신의 형상이었다. 애굽에서 아피스라는 이름으로 섬겼던 신이 금송아지였다. 그들은 입술로 하나님이라고 부르면서 실제로는 아피스를 섬기고 있었다. 옛습관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말과 행동이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그들을 알고 있었음에도 하나님을 만족시키기보다 자신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우상을 섬기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왜 금송아지에 분노하셨는가? 아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이 정식으로 공표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십계명에서 그 어떠한 형상으로도 하나님의 모형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다. 게다가 금송아지는 하나님을 이방 종교적인 관점에서 표현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형상화 하려 했던 것은 인간의 본능적 성향을 잘 보여 준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보이는 것을 선호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어떤 형상으로도 표현하거나 대신할 수 없다. 또한 하나님은 그분의 뜻대로 그분의 백성을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의 백성들이 간구할 때 들으시지만 조종하는대로 움직이는 분이 아니시다.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었을 때 하나님을 조종하려는 좋지 않은 의도가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신 것이다.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표현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그 어떤 모형이나 형체와 전적으로 다른 분이시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님의 형상이 허용되면 인간은 눈에 보이는 형상만을 섬길 뿐 그 형상이 상징하는 하나님은 망각하게 될 것이다. 본질을 놓치고 우상을 섬기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