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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예배강의

예배와 성경(47) -이사야서의 예배

by 처음사랑 2015. 11. 12.




이사야서의 예배

(아래 내용은 '엑스포지멘터리-이사야/송병현'의 내용을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이사야서는 몇 가지 신학적 주제들을 내포하고 있다. 


메시아

이사야서에서 메시아는 매우 연약한 사람의 모습으로 오실 것이며, 그것은 오실 메시아의 겸손을 나타내는 단어이기도 하다. 또한 그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게 될 것임을 말한다. 이는 오실 메시아가 왕이신 것을 뜻한다. 또 언급하고 있는 것은 메시아가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점이다. 그 메시아의 이름은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화의 왕’ 등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 메시아는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오실 것이다.




소명과 희생

매우 성숙한 모습으로 이사야는 자신의 소명과 선포한 메시지를  희생과 헌신으로 뒷받침한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집트의 운명을 경고하면서 3년 동안 벌거벗은 채, 혹은 속옷만 걸친 모습으로 활보했다(20장). 이사야의 벌거벗은 모습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도 이사야를 정신이상으로 취급할 수 있을 정도로 이상한 모습이었을 것이지만 이사야는 하나님의 명령에 그대로 순종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임할 포로생활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경고하기 위하여 이사야의 아들들에게 ‘스알야숩(남은 자가 돌아올 것이다)’, ‘마헬살랄하스바스(노략이 속히 올 것이다)’라는 이름을 짓게 하셨다. 아이들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동네 사람들의 눈총을 받았을 수도 있을 것이고 아이들은 또래에게, 동네 사람들에게 놀림을 받을 수 있는 이름이었다. 그렇게 이상한 이름을 지은 아버지 또한 많은 손가락질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사야는 하나님의 명령에 충실하게 따랐다.


어쩌면 이사야에게 있어 가장 큰 희생은 세상에서의 성공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는 하나님의 눈에 성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사람의 눈에는 실패한 사람이 되었다(사 49:4).




하나님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서의 하나님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6장에서 나타나는 이사야의 소명 체험이 이 사상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거룩’이라는 단어를 세번 연속해서 사용하는 곳은 이사야 6장 밖에 없다. 또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라는 표현도 이사야서에서 25회가 사용되었다(1-39장 12회, 40-55장 11회, 56-66장 2회). 그 외 구약의 다른 부분에서는 6회 밖에 사용되지 않았다. 이 이름은 이사야서에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표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이신 하나님은 유일하신 최고의 통치자이시다. 이사야의 최고 신학은 확고한 유일신론인데 이로 인해 이사야서가 너무나 발전된 신학사상을 나타내고 있다고 하면서 이사야서의 기록 연대를 바벨론 포로기 이후로 보기도 한다.




남은 자

남은 자 사상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강조한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죄인들을 심판하시리라는 예언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심판이 오지 않는다면 남은 자가 나타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남은 자 사상은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한다. 혹독한 심판 후에도 남은 자들이 돌아올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남게 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이 드는 그 때 새로운 시작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 남은 자 사상이 말하는 가장 중심적인 내용이다. 하나님은 결코 심판만 주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심판 가운데서도 그분의 사랑을 잊지 않으신다. 심판이 지난 후 남은 자들은 예루살렘을 신실하고 의로운 도시로 만들어 갈 것이다. 이 사상과 이사야의 아들들의 이름을 연결해서 생각해야 한다. 노략, 즉 심판이 속히 올 것이며 그 심판에서 남은 자들은 돌아오게 될 것이다.




시온 사상

시온 사상은 시편 46, 48, 76편 등에 바탕을 둔 사상이다. 이 사상의 주요 골자는 다음과 같다. 첫째, 시온은 북방의 산 중 가장 높은 산이다(시 48:3-4). 둘째, 그곳에서부터 강이 흐른다(시 46:5). 셋째, 여호와께서 그곳에서 흉용한 물을 누르셨다(시 46:5). 넷째, 시온에서 여호와께서 열방과 그들의 왕을 이기셨다(시 46:7; 48:5-7; 76:4,6-7).


이 중 네번째 사상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있다. 여호와께서 시온성을 침략하는 열방을 이기시는 방법들을 이야기하는데 첫째, 하나님의 직접적인 출현(시 48:6)으로 열방을 물리치신다. 둘째 때로는 꾸짖음으로 열방을 물리치신다(시 46:6-7; 76:6). 셋째, 아침이 오기 전에 모든 적을 물리치신다(시 46:5). 오랜 시간이 아니라 짧은 시간 안에 적을 물리치는 능력을 강조한다. 넷째, 하나님은 전쟁 무기들을 다 부수시고 전쟁을 없애신다(시 76:3). 주님의 정의로운 통치를 의미한다. 여호와께서 전쟁무기를 부수심으로 인해 그분의 공정하고 의로운 통치가 강조되고 더 이상 전쟁의 필요가 없어짐을 이야기 한다.


시온사상은 하나님의 왕권에 기초를 두고 형성되었다.




예배와 영성

이사야서에서 말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예배자들로서 주의깊게 살펴야 할 영역이다. 


이사야는 “구약의 신학자”라 불릴 정도로 논리적인 신학 체계를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론에서 멈추지 않고 현실의 문제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상인들이 저울을 속이고 술에 물을 타면 분노했고(1:22), 권세자들이 사회적 약자를 착취하거나 직위를 이용해 나쁜 짓을 할 때는 하나님의 진노를 쏟아냈다(1:23-26; 3:13-15; 5:8-30). 


그는 믿음과 영성이 삶에서 열매로 나타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선지자였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반드시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선지자의 주장은 1:10-15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예배와 신앙생활을 총체적으로 거부하셨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분명해진다. 


그는 이곳에서 예배, 제물, 기도 등 세 가지를 거부하셨다는 사실로 설명한다.


이사야서가 기록될 당시에 솔로몬의 성전은 건재했다. 물론 히스기야가 앗수르에 성전을 지키는 사람들의 금방패와 성전 벽의 금을 긁어 조공으로 바치기도 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어놓은 화려한 성전을 늘 보며 살았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거하신다는 명백한 증거인 화려한 성전이 그들의 눈 앞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예배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에 만족하고 하나님의 진정한 목적을 잊기 시작하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역시 헛된 일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사야는 순수하고 진정한 예배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갈망했다. 

그는 자신의 책을 통해 이스라엘과 인류의 미래에 대한 여호와의 위대한 비전을 이야기한다(2:1-4; 11:1-9; 12:1-19:25). 

이 비전은 이스라엘의 회복 뿐만 아니라 온 인류가 여호와께 예배하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이사야의 비전이 정점에 이르면서 마지막에 제시되는 66장 역시 여러 가지 예배와 연관된 언어와 이미지를 사용하며 미래를 묘사하고 있는데(특히 66:18-23), 그는 이 위대한 비전을 마무리하며 이렇게 선언하고 있다.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월 초하루와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내 앞에 나아와 예배하리라 

사 66:23


이사야는 자신의 위대한 비전의 핵심을 열방과 이스라엘이 하나되어 여호와께 예배드리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사야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배가 백성의 경건하고 의로운 삶의 연장이 아니라 그들의 부도덕한 행위를 덮어주고 액운이나 떼워주는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호와께 격식과 규례에 따라 제사를 드리는 것 만큼 일상생활에서 한 공동체로서 서로를 공의와 공평으로 대하는 것도 중요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서로에 대한 도덕적, 공동체적 책임을 등한시하거나 회피하는 반면, 예식과 제사에 관한 율법만을 중요시하고 있었고 마침내 예배와 제사가 율법의 모든 것처럼 여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사야는 의롭고 경건한 삶이 뒷받침하지 않는 예배는 믿음이나 영성이 아니라 위선이요 가증함이라고 선포하며 이런 이유로 위선적인 삶을 사는 자들에게 차라리 예배를 드리지 말 것을 권면했던 것이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사 1:15-16


예배나 제물, 심지어 기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의를 추구하는 삶의 자세인 것이다. 예배자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바로 그의 삶의 표징이 되어야 한다.

이사야가 이스라엘 제사에서 제기했던 또 하나의 문제는 형식과 절차가 예배의 본질과 의도를 대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외형적인 것들이 내면적인 것들을 대신해버린 것이다.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사 29:13


이사야서에서 말하고 있는 예배가 바로 삶의 예배이다. 예배의 외형적인 것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이 ‘예배자의 삶’,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에 합당하게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예배를 ‘드린’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자로 ‘사는’ 것에 힘써야 한다.